난 불가능한 것은 없다고 믿었다. 못하는 게 없었으니까. 하지만, 불가능은 전혀 다른 방식으로 내 앞에 찾아왔다. 크게 달라진 것은 없다. 난 여전히 네 개의 바퀴를 쓴다. 잘 보라구. 난 지금도 할 수 있어. [불가능, 그것은 아무것도 아니다]-스테이시 코렛
저는 지금 이 글을 쓰면서 어느새 눈시울이 붉어진 저 자신을 발견할 수가 있었습니다. 그때의 추억을 생각하니 지금도 소름이 돋고, 그때와 마찬가지로 펑펑 울어 버리고 싶습니다. 언제나 저 자신이 나태해지거나, 삶에 회의를 느낄 때 언제든 이 추억을 생각하며 저 자신을 채찍질하고, 반성하곤 합니다. 그때 그 이야기를 우리 YLCer들에게 들려주고 싶습니다.
저는 대학교 시절 야구를 하다가 어깨를 심하게 다친 적이 있습니다. 습관성 어깨탈골 판정을 받고 재활에 매달려야 했습니다. 무리를 하면 다시 빠질 염려가 있었으므로 저는 만사를 제쳐놓고 재활에만 모든 신경을 썼습니다. 3년여 간의 재활 끝에 지금은 멀쩡히 야구공을 던지고 있습니다.
재활과정에서 만난 한 형님을 여러분에게 소개해드리겠습니다. 저보다 5살 많은 형님이었고 지금의 우리와 별다를 게 없는 평범한 대학생이었습니다. 그 병원에 오기 전까지…….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일이고 언제 어디서든 일어날 수 있는 일입니다. 그 형님은 길을 걸어가다가 오토바이에 부딪혀서 하반신 마비가 되셨습니다. 가수 강원래나 개그우먼 김형은 같이 척추에 손상이 생겨서 하반신 마비가 된 것은 아니었지만, 요추부에 이상이 생겨서 하반신 마비가 된 케이스입니다.
제가 의학지식은 짧은 편이라 자세히는 말씀 못 드리지만 척추에 이상이 생겨 하반신 마비가 된 경우에는 평생을 하반신 마비로 살아야만 하나, 요추부 어딘가에 이상이 생겨 마비가 된 경우는 완전한 일반인처럼은 아니지만, 극적으로 신경세포가 살아나서 신경이 돌아오는 경우가 종종 있다고 합니다. 그 확률이 1~2% 미만에 불과하지만 말이죠.
그 형님을 처음 재활센터에서 뵙고 항상 같이 재활에 힘쓰며 땀을 흘렸습니다. 그 형님의 인격이 맘에 들기는 했지만, 어느 정도의 동점심 또한 제 마음 한쪽에 자리 잡고 있었던 것은 사실입니다.
요즘 젊은이들은 유행을 따라 '막장'이라는 말을 자주 사용합니다. 무언가 수틀렸을 때, 자신의 마음에 들지 않을 때, "막장이다!"이라는 말을 쓰곤 합니다. 하지만, 막장이라는 단어는 그렇게 빈번하게 사용할 단어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막장의 본래 뜻은 광산이나 갱도 끝에 있는 채굴을 뜻하는 용어로 '인생의 끝'으로 비유되는 단어입니다.
사실 이 '막장'이라는 말은 이 형님처럼 인생의 끝에 접어든 사람들에게 비유되는 것이 적당할 정도로 파급효과가 큰 단어입니다. 평범한 학생에서 인생의 막장을 맛 보고 있는 이 형님은 거의 불가능에 수렴하는 99%의 확률임에도 불구하고 나머지 1%에 목숨을 걸고 자신의 열정을 다 받쳤습니다.
형님과는 3년여를 정기적으로 같이 운동하며 거의 친형제나 다름없을 정도의 우애를 과시했습니다. 친형이 없는 저는 마치 형님을 제 친형처럼 따랐고 친동생이 없던 형님은 자신의 몸이 불편함에도 불구하고 항상 저를 먼저 생각해주며 친동생 대하듯 챙겨주었습니다.
형님을 만난 지 3년여가 된 어느 날이었습니다. 형님은 휠체어를 타고 저에게 다가와 경건한 표정을 저에게 말했습니다. 평소의 형님 같지가 않았습니다.
"형규야, 내 허벅지 좀 세게 꼬집어 볼래? 너 야구 좋아하잖아. 손아귀 힘셀 거 아냐. 한번 있는 힘껏 꼬집어 봐!"
"왜요? 무슨 일이에요?"
"그냥 한번 꼬집어봐."
하반신 마비로 고생하고 있는 형님이고, 어차피 내가 세게 꼬집어 봤자, 느끼지도 못하실 형님이기에 전 있는 힘을 다하여 형님의 오른 허벅지를 꼬집었습니다.
그런데 그때였습니다. 형님이 갑자기 눈물을 보이셨습니다. 저는 사실 의아했습니다. 어차피 통증을 느끼지 못하실 상태고 미동조차 없을 것인데 형님께서 왜 그런 행동을 보이시는지 궁금했습니다.
"형 왜 그래요? 왜 울어요?"
"형규야 느껴진다. 느껴져……."
"네? 느껴지다니요?"
형님은 함박눈 같은 눈물을 흘리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방금 네가 꼬집은게 느껴진다고! 며칠 전부터 하반신에 뭔가 간지럽다는 느낌이 들면서 오싹한 기분이 들었는데, 이제 서서히 느낌이 와. 이제 느껴져."
이 말을 듣자마자 저는 마치 베이징 올림픽에서 야구 대표선수들이 금메달을 따고 다 같이 포옹한 것처럼 형님을 껴안으며 울음을 터뜨렸습니다. 둘이서 몇 분간 펑펑 울었습니다. 정말 기뻤고, 놀랐습니다. 저의 일은 아니지만 세상에 태어나 이렇게 기뻤던 적은 없었습니다.
지금 그 형님은 완전히 걸어다니시지는 못하지만, 휠체어를 타면서 종종 "ㄷ" 자형 워커를 가지고 몇 분 정도는 가볍게 걸어다니십니다.
로또에 당첨된 것만이 큰 행운은 아닙니다. 사실, 우리 모두 행운아입니다. 두발로 걸어다닐 수 있는 것만으로도 자신의 삶에 감사해야 합니다. 두발로 걸어다닌 것에 모자라 모두 4년제 대학에 다니고 있으며, 대한민국 최고의 전국 연합 동아리인 YLC의 일원으로 이 웹진을 읽고 있는 자체가 큰 축복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저는 항상 형님을 생각하며 저의 부모님에게 감사하고 제 삶에 감사하고 있습니다.
1% 미만의 확률에도 불구하고 받아들이기 어려웠던 현실을 받아들이고 어떤 힘든 상황에도 굴하지 않으며 '삶의 끈'을 놓지 않았던, 항상 운동에만 정진했던 형님의 모습이 아직도 기억납니다.
힘든 경제상황, 점점 좁아만 지는 취업의 문, 쌓여만 가는 스트레스, 그리고 그 외의 수많은 고민들.
어른들은 말씀하십니다. "지금 사회가 발전하고 풍요로워 졌지만, 지금 이 시대에 태어난 너희가 불쌍하다."
네. 맞는 말입니다. 이 시대의 젊은이들은 정말 불쌍하고 힘듭니다. 하지만, 형님처럼 이 정도의 힘듦이라도 겪어 봤으면 하는 사람들이 주위에 많이 있습니다. '젊음'이라는 단어는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의미를 내포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에게 당면한 이러한 힘듦은 형님과 같은 사람들에겐 배부른 투정으로밖에 들리지 않음을 명심합시다.
좁은 취업문, 까짓 거 뚫어버리면 그만이죠. 고민보다는 '긍정의 힘'으로 힘든 세상을 타파할 수 있는 YLCer들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